경주 동남산의 유적들
(불곡, 탑곡마애불상군, 화랑교육원 , 천동골, 승소골, 염불사지, 양피사지)
답사일 : 2017년 9월 2일
경주 남산은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큼 신라의 문화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 여래좌상
이 불상은 남산 동쪽 기슭 한 바위에 자연암을 0.9m나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이다.
경주에서는 "할매부처"로 불린다.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북쪽 기슭에 감실(龕室: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만든 집이나 굴 형태의 공간)을 파고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불감은 높이 약 3m, 너비 3.8m의 바위 면에 깊이 1m, 높이 1.42m의 규모를 지닌 삼각형에 가까운 단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감실을 파고 불상을 고부조로 새긴 가장 이른 예로서, 오른쪽 어깨와 왼쪽 무릎이 약간 부서진 것을 제외하곤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경주 남산 불곡(佛谷)은 이 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마애여래좌상이 언제 조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불곡 마애여래좌상 위부분에 목조 가구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고, 감실 주변에 근년까지 기와 조각이
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전에는 목조 기와 건물의 전실(前室: 앞 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초기 불상에서 많이 보이는 바와 같이 이 불상에서도 머리와 발이 몸에 비해 큰 편이다.
낮고 편평한 육계(肉髻: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 머릿결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소발(素髮), 둥근 얼굴,
미소를 띠고 있는 상호(相好: 얼굴), 부드러운 어깨 등 전체적으로 아담한 모습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보물 제201호. 경주시 남산 탑곡에 높이 약 9m, 둘레 약 26m의 큰 바위 4면에는 수십 구의 불보살상과 기타 조각이 새겨져 있다.
바위 남면은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한 단 높은 대지를 이루고, 동·북·서면은 이보다 한 단 낮아 바위의 전체 높이가 9m 정도 된다.
동면(東面)의 모습
바위면을 최대한 활용해서 불상들을 새겨 넣었다.
오랜시간 흐르면서 훼손이 되었을텐데 아직도 그 섬세함이 여실히 전해진다.
동면(東面)의 모습
삼존불상과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날고 있는 6구의 비천상(飛天像)이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로는 삼존불의 본존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승려가 있다.
사진 왼쪽 바위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 아래 앉아 참선하는 승상과
그 바위 앞에 조각된 보살상 등 모두 11구의 불상·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자연석이라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마애불과 입불
삼존불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이 본존 쪽으로 몸을 비틀고 있다. 본존은 마멸이 심하여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지만,
동면 본존불과 유사하게 얕은 육계, 둥근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길고 유연한 상체에 넓게 퍼진 무릎이 특징적인 체구, 간명한 옷주름 선 등이 나타난다.
광배는 두광으로 원형 광배에 연꽃과 광선무늬가 있으며, 대좌는 만개한 연꽃무늬로 구성한 특이한 모양이다.
왼쪽 암면에 새겨진 나한상은 앳된 동안(童顔)의 모습과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옷자락으로 덮어 내린 동자승 모습이다.
환조상의 옆 바위에 새겨진 나한상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길고 복스러운 얼굴, 위엄 있는 자세 등을 뛰어난 수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애불상군 남면의 모습
입체여래상
부처바위 남면 감실 앞에 입체로 된 여래입상.
한 변 길이 1.12m의 사각 기단 위에 높이는 2.21m의 여래상이 서 있다.
대리석에 발만 새기고 발목 이상은 한 돌로 된 박력있는 상으로 몸체는 대리석의 홈에 끼워넣었다.
얼굴과 두광은 많이 훼손되었으나 둥근얼굴임을 알 수 있다.
이 부처의 손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상을 입상에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의 4면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북면(北面)
목탑형식의 9층탑과 7층탑이 좌우에 새겨져 있고 그 밑에는 긴 꼬리가 달린 동물이 마주보고 있다.
두 탑의 상륜부 사이로는머리에 보개(寶蓋)가 늘어진 불상이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고,
9층탑 꼭대기에는 비천상 1구가 조각되어 있다.
특히 북면에 새겨진 탑의 형태는 기단에서부터 상륜부의 앙화(仰花)까지 갖춘 목탑형식으로
신라시대의 목탑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마애조상군과 마주하는 3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옥개받침도 3단으로 되어있고 새긴 솜씨도 둔박하다.
옥룡암이라고 불리는 불무사
대한불교 정토종 소속으로 1924년 박일정스님이 창건하여 오랫동안 옥룡암으로 불리다가
2000년 중반쯤 불무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옥룡암은 대웅전 ,관음전을 포함해 6-7채의 작은 산사로, 낭산, 사천왕사지, 그리고 멀리 토함산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1942년 8월 항일시인인 이 육사님이 이곳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쓴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 에게” 란 제목으로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심정을 나타낸 시조 2편이 전해지고 있다.
화랑교육원 가는 길...
화랑교육원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경상북도 교육청 직속 청소년 교육기관.
1973년 5월 청소년들이 화랑의 얼을 계승하여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고
바른 품성과 인격을 도야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고 한다.
화랑교육원에서는 궁도장, 전통적인 한옥의 선을 살린 교육원은 강의와 토의를 비롯하여
아침수련, 자기관리, 봉사활동, 유적 답사등의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경주 남산동 석조감실
이 감실(龕室)의 크기는 높이 2.5m, 내부공간의 바닥길이 1m, 높이 1.4m, 깊이 0.9m이고, 석조 불상을 모셔두던 곳이다.
남향을 하고 있으며 그리 다듬지 않은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삼고, 그 위에는 방형판석 4매를 결구(結構)하여 불상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었다.
판석의 내면(內面)은 다듬고 외면(外面)은 다듬지 않은 것을 사용하였다.
입구 바닥에는 연화문 대석을 놓았는데 원형연대석(圓形蓮臺石)은 파손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이처럼 좁고 긴 연대석으로 입구를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성격의 불상을 모신 곳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좌불을 안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천동골
경주 남산에서 봉화골로 오르다 보면 칠불암과 신선암이 나온다.
그 봉화골 가는 길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천동골인데
제법 큰 절이었을 법한 절터와 디딜방아터가 있다.
경주 남산 천동골 천동탑
돌기둥에 100개 가량의 감실이 파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얼핏보면 도깨비방망이 같은데 그 그멍이 부처를 모셨다는 것이다.
승소골의 옛 절터
일제시대에 이자리에 있던 탑을 옮겼다고 기록한 표시석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이 있었는데 그 곳의 절을 피리사라 하였다.
그 절에는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늘 아미타불을 외었다.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렸는데,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가 한결 같았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 안에 모시고, 그가 본디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안말에 염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사찰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2009년 1월에 동서 삼층석탑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켠에는 도지동 이거사지석탑의 탑부재들이 놓여져 있다.
양피사지(讓避寺址) 동, 서삼층석탑 중 동탑
안내판에는 보물 124호 남산동 동서삼층석탑(東西三層石塔)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원래 이 동네 이름이 피리(避里) 또는 피촌(避村)으로 불리웠고, 삼국유사에도 양피사(讓避寺)라는 절 이름이 나와있는데
일제시대에 이곳의 행정구역이 '남산리'인 까닭에 '남산리 삼층석탑'으로 명명, 기록되어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동탑은 기단을 8개의 돌로 쌓았는데 한개의 돌로 만들지 않고 여러개의 조각돌을 이어서 사용하였으며
특이하게 아래위로 두개씩 이(齒)를 맞물려 쌓았다.
그래서 안내판에 모전석탑(模塼石塔)의 형식을 받았다고 써있다.
탑의 높이는 7m로 옥개석을 보면 낙수면의 아래 위를 모두 계단식으로 경사를 지워 지붕을 만든 것이나,
탑신에 우주를 표현하지 않은 것등을 보면 모전석탑(模塼石塔)의 형식을 가져왔다고 추측된다고 한다.
서탑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 삼층석탑이다.
이중기단 위에 삼층석탑을 올렸으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으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비례미와 안정감이 뛰어나 눈맛이 시원한 삼층석탑으로 전해진다.
석등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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