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문화재 답사 3> 망해사지 석조부도 / 청송사지부도

박태문 2017. 6. 23. 13:53




망해사지 석조부도


답사일 : 2017년  6월    20






울주 망해사지 승탑(蔚州 望海寺址 僧塔)은 울산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지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승탑 2기이다.

 옛날에는 동쪽과 서쪽에 똑같은 모양의 2개 부도였으나, 동쪽 부도는 일찍이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웠다. 높이는 약 4m이다.

상륜(탑의 맨꼭대기 장식)은 두 탑 모두 없어졌으나 일부가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

이 부도들은 팔각원당의 신라 시대 조각수법에서 다소 특징없이 섬세한 모습이 엿보이나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훌륭한 작품에 속한다.

망해사지처용설화와 관련있는 절터로 신라 헌강왕(875년~885년)때 세워졌고  여기서 보면 아득히 처용암이 있는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망해사지 동부도







망해사지 서부도






망해사지 종형부도(조선후기)














망해사지석조부도(望海寺址石造浮屠) 보물 제173호. 동부도와 서부도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망해사지석조부도

망해사는 동해용왕의 식복과 신라의 호국을 빌던 신라 고찰이였지만 역대의 병난으로 파괴되어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법당이 세워졌던 자리에 주초석만 정연하게 심어져 남아있고 법당 뜰 좌우에 세워진 석조부도 두기만 남아있다.



망해사지 석조부도는 망해사의 터에 남아 있던것으로 망해사는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도들은 그때 세워졌다는 말이 전해지고있다. 부도는 스님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

원래 동 서로 나란히 두 기가 있었으나 동쪽 것은 일찍이 무너져 땅에 방치되었는데,1960년11월에 다시 세웠다.상륜은 모두 없었졌다.이부도들은 조각 수법에서 다소 형식화된 면이 있으나,팔각 원당의 기본형을 계승하고 있고,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어 통일신라 말기의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망해사 한 켠에.. 복전함








망해사 대웅전, 좌측으로 요사채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불인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있다.























영축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청동시루, 청동완, 청동향로 등,,

출토된 보물들은 울산박물관에 소장중이다.










울주 청송사지 부도(蔚州 靑松寺址 浮屠)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 부도는 청송사의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물 제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부도 파변이 산재하고 있어, 이 일대가 일명 ‘부도골’로 불리기도 하였다. 모두 3기이며, 조선시대의 돌종 모양[石鐘形]부도이다.

오른편 부도는 높이 3m로 지대석, 기단석, 연꽃 좌대, 탑신(塔身)이 차례로 짜여져 있다.

기단석은 남북 면에는 인왕상을, 동서 면에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의 밑 부분에는 산스크리트 글자가, 윗부분에는 연꽃 봉우리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부도는 높이 2.2m로 기단석 4면에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에는 ‘서응당 진흡대사(瑞應堂 愼洽大師)’라는 글자가, 아래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왼편에 위치한 높이 1.2m의 부도는 기단 없이 탑신만 놓여져 있다.

<위키백과 인용>






청송사지 삼층석탑


울산시 문수산과 남암산 아래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신라시대에는 청송마을 전체가 절터 였음을 알수있다.

탑은 높이가 5.5m로 현재 민가에 둘려 쌓여 있으며 이 부근은 매우 큰 가람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동안 매몰과 파손이 있었으나 1962년 해체, 수리되었고 파손된 부재는 일부 새로 보충하였다.

2중 기단 위에 세운 3층 사각형 석탑으로 기단부의 각 부재는 수매의 석재로 결구하였으나 규제성을 잃었다.

하층기단의 지대석과 중석(中石)은 1석으로 구성하고 중석 각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두 양식이 모각되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층 1석씩 되어 있음은 통식을 따른 것이지만 초층 옥신은 특히 장대(長大)하고

2층 옥신은 이에 비하면 급격히 감축되었다. 상륜부에는 노반만이 남아 있다.

해체, 수리시 상층기단의 사리 ·동제 사리함에서 청동여래입상 1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수정구옥(水晶勾玉) 등 30여 점을 발견하였다.

좋은 비례는 아니나 지방에 분포된 신라 석탑으로서는 주목되는 유물이다












3기의 석종형부도


 보물 제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부도 파변이 산재하고 있어, 이 일대가 일명 ‘부도골’로 불리기도 하였다.

모두 3기이며, 조선시대의 돌종 모양[石鐘形]부도로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이다.

오른편 부도는 높이 3m로 지대석, 기단석, 연꽃 좌대, 탑신(塔身)이 차례로 짜여져 있다.

기단석은 남북 면에는 인왕상을, 동서 면에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의 밑 부분에는 산스크리트 글자가, 윗부분에는 연꽃 봉우리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부도는 높이 2.2m로 기단석 4면에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에는 ‘서응당 진흡대사(瑞應堂 愼洽大師)’라는 글자가, 아래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왼편에 위치한 높이 1.2m의 부도는 기단 없이 탑신만 놓여져 있다.













기단 없이 탑신만 있는 모습








연꽃 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