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그 열번째 : 보길도
다녀온 날 : 2015. 3. 7 - 8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날 : 해남 땅끝마을 도착 → 땅끝 출항 → 노화도 산양진항 도착 → 보길도 부용동 원림 걷기
(세연정 동백숲 → 동천석실 동백터널 → 부용리 동백숲 → 낙서재, 5km) → 망끝전망대, 보옥리 공룡알해변과 동백숲 탐방
둘째날 : 도치미끝 걷기 → 예송리 해변 탐방 → 노화도 동천항 출항 → 완도 화흥포항 도착
환상의 섬, 보길도..
그 땅끝에서 길은 다시 이어지고,, 누군가는 그 길을 걷는다..
3월, 봄 기운이 바짝 다가와 있음을 느끼며 다시 섬을 걷기위해 나선다..
남도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 '동백의 화원' 보길도로 가련다..
보길도는 넓이가 33km2, 해안선 길이가 41km쯤이며 5~6년 전까지만 해도 완도 제일의 관광섬으로 손꼽혔다.
풍광이 빼어난 데다 고산 윤선도(1587~1671년)의 자취가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도 보길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한 것도 그래서다.
해남하면,, 그 수식어는 당연 "땅끝마을"이다.
해남은 원시적인 도로와 불편한 교통수단에 의존했던 옛날에는 남녘 땅 끝 바닷가에 버려진 궁벽한 지역이었다.
과거 바다 기슭의 후미진 구부렁이란 뜻의 새금(塞琴), ‘바닷물에 잠기는 땅’이란 뜻으로
침명(浸溟), 또는 ‘물가에 버려진 땅’이라는 투빈(投濱) 등으로 불렸다.
고려 초에 침명현이 해남현으로 바뀌면서 해남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때는 해진현이었다가
1985년에 해남군으로 고쳐졌고 1955년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마주보고 서 있는듯 하다..
바위틈에서도 생명력은 강하게 탄생한다..
이제 곧 저 바다를 가르며,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리라...
땅끝항을 출항하여 노화도로 향한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우리나라의 땅 끄트머리를 떠나 다시 섬으로 간다..
난간에 기대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까지 시원하다..
또 다른 여객선이 바다를 시원하게 가른다..
땅끝항을 출발하여 40여분을 달리니 산양진항이 가깝게 다가온다..
노화도에 도착하여 버스를 이용하여 보길도까지 이동..
보길도에 들어서자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와 마주한다..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
윤선도는 1637년부터 85세로 죽을 때까지 일곱 차례나 보길도에 왔다갔다 하면서 13년 동안을 머물렀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다..
원림을 둘러보기전 정보센터에 먼저 들러 그의 발자취를 알아본다..
보길도의 유물은 물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고문집선"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잘 정돈된 편안한 분위기..우리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보길도와 윤선도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자면,,
고산은 51세 때인 조선 인조 15년(1637년)에 제주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85세를 일기로 부용동 낙서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보길도의 부용동 일대에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무민당, 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지었다.
고산이 죽은 뒤 윤선도 원림(園林)을 그의 서자와 후손들이 관리했으나 점차 황폐해졌다.
300여 년 동안이나 폐허처럼 방치했다가 1993년부터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낙서재 등을 하나씩 복원하여
현재 보길도의 윤선도 원림은 명승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정보센터를 둘러본후 뒤편으로 세연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고산은 "이곳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하여" 부용(芙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한 곳에 정자를 지어 노래와 춤과 시로 마음을 닦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
윤선도의 정취가 흐르는 곳을 걷는다..
세연정 앞의 연못.. 세연지
이곳에서 윤선도는 배를 띄어 <어부사시사>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바위를 좋아한 윤선도가 자연을 표현한 연못의 바위들..
그저 어지럽게 널려 있는듯 하지만 하나, 하나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세연정
두 못 사이에 세운 정자가 세연정으로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였다..
조선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어부사시사’를 지으면서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말년을 보낸 정원으로
조성된 세연지와 세연정은 개울물을 끌어서 성리학 사상을 투영하여 조성한 정원으로 명승제34호로 지정되었다.
윤선도를 찾아온 손님들이 이곳을 거쳐갔으리라..
세연정에서 바라본 정원의 모습이 아름답다..
시와 음악을 즐기고 춤과 풍류를 즐겼던 이곳은 마치
축소판 경복궁 경회루 같다..
판석보
세연정 앞에는 연못위에 놓여진 '굴뚝다리' 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정원 유적중 유일한 석조보인 판석보가 있다.
건기에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준다.
비홍교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 겨우 한 간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 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이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협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3대 정원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식지, 그리고 이곳 보길도의 세연정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해서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이 저절로 떠올랐을듯 하다..
세연지의 동백,, 색이 곱다..
봄 소식.. 남도의 푸르름이 상큼하다..
자연석은 아니지만,, 커다란 돌다리를 건너 낙서재로 향한다..
침실
동천석실에서 약 20m 아래에 있는 정자형 침실..
2002년 발굴조사시 석열과 기둥자리와 온돌, 연도가 발굴되었으며 고산이 추운날에는 불을 때고 잠시 쉬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아궁이가 석촉 아래 멀리 있어 온돌구조가 특이한 구조이다.
동천석실(洞天石室)
'신선들의 거주처'라는 의미로 세연정이 땅의 정원이라면 동천석실은 하늘의 정원이다.
세연정에서 부용리 쪽으로 약 1.5 km쯤 들어가면 낙서재(樂書齋) 건너편 산비탈에 동천석실(洞天石室)이 있다.
부용동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윤선도가 특히 사랑하여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명승이라 하였다.
도르래를 달아 필요한 물품들을 날랐다는 하늘정원 동천석실은 죽기 전에 반드시 가보아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윤선도만의 아늑한 공간이었을 이곳에서 책을 읽고
멀리 부용리 마을을 내려다보며 시를 읊으며 신선같은 삶을 살았으리라..
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조 15년)에 들어와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1637년 보길도에 입도하여 주산인 격자봉의 혈맥을 쫓아 집터를 잡고 3칸의 초가로 된 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낙서재이다..
사진 맨 앞쪽으로 보이는 것이 동와..
보길도지에 의하면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이곳과 서와를 지었다하여 각기 한 칸씩인데 사방으로 퇴를 달았다고 한다.
눈은 청산에 있고 귀는 거문고에 있으니
세상의 무슨 일이 내 마음에 이르리요
가슴 가득한 호연지기를 아는 이 없으니
한 곡의 미친 노래를 홀로 읊어 보노라
(윤선도 <낙서재에서 우연히 읊다> 전문)
낙서재 앞뜰에 자리한 귀암
윤선도선생이 달맞이하던 장소록 기록된 이 바위는 화강암을 쪼아 거북형상을 만든 370cm*270cm 규모의 바위로써
선생이 낙서재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지표였다.
전사청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서재
여러 제자들이 윤선도에게 학문을 배운 곳이다.
섬마을 풍경..
저린 다리를 쭉 펴며,, 어촌의 아낙은 작은 쉼을 얻는다..
공룡알해변
공룡알해변은 사람 머리 크기만한 돌이 해변에 깔린 곳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이 마치 공룡알 같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인근 주민들은 ‘뽀래리 깻돌밭’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돌들은 함부러 가져갈 수 없다고...
해수욕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갯돌에 앉아 파도를 맞는 재미는 이색적일 듯하다..
해변에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섬.. '치도'가 위치해 있다..
'조선 풍류객'을 눌러앉힌 보길도에 하루해가 지고 있다..
예송리 해변에서 바라본 일몰..
중리해수욕장 인근에서 1박을 하고 내일 가게될 보길도의 숨겨진 비경, 도치미끝을 상상해 본다.
중리해수욕장의 아침..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진다..
백사장 길이 약 1㎞, 너비 약 130m로 바다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허리를 넘지 않는 얕은 수심과 맑은 바닷물이 있어 피서지로 좋다.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을 따라 300여 그루의 노송이 자라고 있어 송림에서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앞으로는 목섬, 기섬, 갈마섬 등의 작은 섬들과 동쪽으로는 소안도가 자리하고 있어 바다에 안겨 있는 듯 편안한 바다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보길동초등학교
흙으로된 운동장이 꽤 넓다..
중리해변은 고은 모래들이 깔려있다.
반짝반짝 눈으로도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는듯 하다..
잔잔한 물결이, 마냥 평온하게 다가온다..
중리마을에서 도치미 등산로로 한 참을 걷다 뒤돌아본 풍경..
다도해의 섬과 바다가 환상처럼 펼쳐지며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왕복 4㎞의 도치미 길은 10분 남짓만 경사일 뿐 내내 평탄한 길이다.
더 이상 갈 수없는 벼랑끝에 도착.. 도치미끝의 아찔한 절벽..
도치미란 "도끼날의 끝"이란 뜻이라 하니,, 도끼날처럼 날카롭고 아찔한 절벽의 끝에 온 것이다..
수 많은 양식장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장엄한 풍경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양식장 너머로 예송리 해변과 예작도가 보인다..
가슴이 뻥 뚫리며 보길도의 속살을 제대로 보 수 있다..
내려가는 능선길에서 마을풍경을 담아본다..
봄볕 아래서 봄을 캐낸다..
잔잔한 수면만큼이나, 정지된 시간속에 있는듯 나른하다..
이제 보길도를 뒤로하고 다시 노화도로 이동한다..
노화도 동천항을 출항하여 완도로 향한다..
고산 윤선도의 아름다운 정원, 세연정의 여운이 잔잔히 머릿속을 맴돈다..
늘 그러한 감동들로 '다음에 다시 한번 와봐야지..'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상 이 먼 땅끝까지 오기란 쉽지 않다..
그저 그 환경이 주어졌을때, 맘껏 보고 느끼고 즐겨야 한다..
이러한 것은 비단 섬여행에서만 해당되지 않고, 우리 일상 또한 그러하다..
하루, 하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살리라..
최선이 곧 최상이리라..
<보길도 : 인문학습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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