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그 아홉번째 : 금오도, 향일암, 오동도
다녀온 날 : 2015. 2. 7 - 8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날 : 여수 돌산도 신기항 - 금오도 여천항 - 금오도 비렁길 걷기(8.5km)
함구미 선착장 - 미역널방 - 송광사 절터 - 초분 - 신선대 - 두포마을 - 굴등전망대 - 촛대바위 - 직포 - 학동 마을길 - 우학리 내외진
둘째날 : 금오동 여천항 - 여수 돌산도 신기항 - 향일암 - 오동도
섬 여행은 늘 그 계획부터가 즐겁다..
짜여져있는 포멧이 아닌 그저 흐르는대로 가고자 하지만, 최소한의 배편과 일정은 계획해야 하니....
며칠 전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져산다..
곧 봄이 기지개를 켜게될 2월, 해안 절벽을 따라 걸으면 내내 바다를 볼 수 있는 금오도 비렁길,
일출명소인 향일암과 ‘동백의 성지’로 유명한 오동도로 떠난다.
바다, 바람, 하늘, 나무, 흙, 그리고 그곳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
평범한 것들을 갈망하며 여수로 발길을 옮긴다..
돌산대교
돌산도 신기항의 금오페리5호..
주말이지만 조금은 한적한 느낌이다..
곧 만나게될 금오도를 기대하며 몸을 싣는다..
조금은 한산한 모습의 항구..
여수의 섬 아닌 섬 돌산도의 끝자락 즈음에 이르러 신기항을 만난다.
신기항에서 30여분 화태도, 대두라도 등 섬들을 지나면 금오도에 닿게된다..
드디어 금오도로 출발..
늦추위로 바람은 아직 차지만 기분좋은 기운이 팍팍 솟는듯 하다..
점점 멀어져가는 신기항..
선상에서 보는 바다는 늘 편안하고,, 말이 없이 고요하다..
섬과 바다,, 그리고 페리호
그림이 어울린다..
30분 가량 달려 금오도 여천항에 닿는다..
금오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다.
금오도는 동백 숲이 우거져 녹색이 짙은 나머지 검은색에 가까워 '거무섬'이라고 불린다.
섬의 모습이 자라와 비슷해 자라 오(鰲)자를 써 '금오도(金鰲島)'라고 불리며 불과 1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무인도였다.
늘 소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섬, 금오도 또한 그러하다..
마을 서쪽 대대산(大代山) 줄기 끝 부분이 용(龍)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용두(龍頭)라 불렀고
해안절벽이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룬다 해서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바닷빛이 참 곱다..
여수시에서는 2012년 세계 해양엑스포를 유치하면서 여수관내의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박물관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래서 이미 19개나 되는 여수의 섬들이 이미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다.
다리가 생긴 섬들은 섬아닌 섬이 되면서 육지와의 왕래가 잦아지며 편리해졌지만 대신 섬으로써의 정체성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금오도 주민들은 육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금오도를 섬으로 남겨놓았다.
초창기에는 섬 주민들 대다수가 연육교 공사에 찬성했지만 섬의 정체성을 잃고 몰락한 타 지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끝내 섬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정말 현명한 선택이 아닐수 없다..
금오도 비렁길 안내도
비렁길은 여수 사투리로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렁길은 옛날부터 섬 주민들이 땔감과 낚시를 하러 다니던 해안길이다..
금오도 비렁길 옆을 지키고 있는 또 하나의 표지판..
여수 금오도 방풍..
금오도는 방풍이라는 나물 주산지이다.
방풍은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을 이루고 꽃은 백색으로 7-8월에 피는데 오장을 좋게하고
특히 풍을 예방하여 임산부의 산후풍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방풍 생산량의 80% 정도가 금오도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하니,
이 섬의 주요 농업소득원이 되는 셈이다..
나름 고객의 편의를 생각해 개조되었을 식당..
소박하지만 찾은이를 위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섬사람들이 채취한 미역을 절벽위 평평한 곳에 널어 말렸다고 하는 미역널방을 지나
한숨 돌리고 서니,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다..
미역널방에서 바라본 수직절벽..
비렁길을 걷다보면 기암절벽과 오염되지 않은 바다, 푸르고 웅장한 산세, 향기로운 바람까지...
아름다운 풍광을 한꺼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해안 절벽이다..
아찔한 만큼 다도해를 보는 풍광도 시원하고 거칠것 없이 장쾌하다..
고요하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잘 보아야 한다..
이 곳 비렁길 주요 주간은 토종고래 ‘상쾡이’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하니
언제 상쾡이가 펄쩍펄쩍 뛰어오를지 모를 일이다.
사라져가는 수산자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생태체험장으로서의 역할을 더하면서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쏟아내릴 것 같은 바위군들..
그 앞이 옛 송광사가 자리하던 곳이다..
송광사 절터..
그 유래가 있어 사진으로 남겨본다..
송광사 절터를 지나 얼마쯤 후, 초분이 하나 보였는데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가묘형태로 안치했다가 2-3년 후 본장을 하는 것이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가족을 배려한 섬 특유의 장례법으로 섬사람들의 장례풍습인 셈이다.
돌담과 이정표의 구색이 어울린다..
섬에선 조금만 시야를 멀리 두면,, 이렇게 아름다운 관경이 펼쳐지리라..
다도해의 아름다움에 빠져,,
움츠러든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 하다..
비자나무와 콩난
오래된 비자나무를 감싸고 있는 콩란.. 그래서 나무 이름이 '비자나무 & 콩난'이다.
서로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멀리 매봉산이 보인다..
금오도가 무인도였던 것은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민간인의 입주를 금지시키고 사슴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해서 여수 앞바다의 많은 섬들 중에서도 특히 때 묻지 않고 자연을 간직한 섬이다.
또 섬에서 자생하는 황장목의 재질이 좋아 궁궐을 건축에 사용되었으며, 임금의 관을 짤 때도 이곳의 나무를 썼다고 하니 그 명성이 높았을 만하다..
하지만 1884년 태풍으로 금오도의 황장목들이 쓰러지면서 금오도 출입제한이 풀렸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을 허락지 않던 금오도는 현재 1,600여명의 주민들이 '반농 반어업'에 종사하며 관광으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쪽빛바다가 이런 것일까?
잔잔한 파도가 비렁에 부딪힐 뿐, 잠을 자듯 바다는 고요하다..
낡은 집 한채..
누군가에게는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집이리라..
땔감으로 쌓아놓은 장작더미가 작은 위안이 되는 마음은 뭔지....
한편은 숲이, 다른 한편은 다도해 풍경이 펼쳐지는 멋진 해안 벼랑길..
산과 계곡도 좋지만 '바다'라는 쉼터는 편안한 어머니 품 같다..
미지의 세계인듯...
잠잠, 평온, 고요....
울창한 숲과 신비한 기암괴석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어 각광받는 금오도..
인위적이기 보다 자연 그대로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요즘 시대에도 이런 집이 있을까?
지붕이 날라갈까 밧줄로 동여맨 모습이 그물에 낚인 덩치 큰 물고기 같다..
빨래 대신 말라가는 생선... 학동마을의 소박한 풍경이다..
학동 마을은 동쪽 산의 생김새가 학을 닮았다고 이름 붙은 마을이다.
'원학'이라 부르다가 해방 이후 '학동'이 됐다.
어느덧 금오도에서의 하루가 저문다..
<둘째날>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잔잔하게 해주는 감동이 있다..
금빛으로 물든 바다,, 가슴까지 물들어 가슴도 촉촉해지는 듯 하다..
아담하고 예쁜 여남초등학교
알록달록한 초등학교의 건물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여남중·고등학교..
여남초등학교와 여남중·고등학교가 같은 건물과 운동장을 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늦겨울의 추위로 섬마을의 아침은 아직 인기척이 없다..
여남초등학교와 여남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시야에 들어온다..
깨끗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와 섬마을의 소박한 풍경들에 절로 힐링이 된다..
남면 보건지소
섬의 행정중심인듯 하다..
1995년, 금오도 개척 100년을 기념하여 기념비가 세워졌다..
금오도 남쪽 끝, 이웃한 섬 안도..
섬이 기러기 모양 같다고 해서 기러기 '안(雁)'자를 써 안호(雁號)라 하다가, 1910년 안도(安島)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안도는 신라 말 장보고 선단을 따라 당나라에 불법을 구하러 갔던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이 일본 귀국 길에 들렀던 섬으로 전해진다.
금오도가 멀어진다..
가까운 듯 먼 섬, 금오도
'국토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연륙교를 놓아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요즘
의료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섬 생활이 불편할 법도 하데,, 금오도 주민분들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신다.
육지와의 고립된 삶이 가져온 '슬로우 라이프'의 장점을 먼저 생각하시기 때문이리라...
섬은 그냥 바다에 떠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금오도 주민분들 ...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 갑자기 찾아온 많은 탐방객들로 훼손되어 버릴까 노심초사 하신다.
섬은 간듯 온듯 흔적없이 그렇게 찾아야 더 아름다운 곳일게다..
해안엔 역시 등대가 있어야 그림이 되는가 보다..
오전의 태양빛이 따스하다..
물빛이 칼치의 은색을 닮았다..
다시 신기항에 도착하여 금오산 향일암을 탐방한다..
매표소 옆으로 계단을 한참 오른 후, 향일암으로 향하는 일주문과 만난다..
등산로와 계단을 올라..
향일암 가는 길에 지나는 바위동굴..
큰 바위틈새로 줄을 서서 지나야 통과할 수 있다. 신비롭다..
소위 기도빨 잘 받는다는 암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바위산이나 바위 위에 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땀 흘리며 높은 곳으로 힘들게오르는 동안 몸과 마음의 욕심을 비워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정화된 마음으로 마침내 기도처에 도달한 순간 기도객들은 이미 기도의 반은 성취하게 될듯 하다.
언제나 소망은 끝이 없고 성취는 기약이 없다..
조금은 비워내고 걸러내어 세상의 것들에서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인듯, 지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향일암 왼쪽 바다에는 중생(衆生)의 서원(誓願)에 해수관음보살이 감응했다는 감응도,
정면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 바다에는 아미타불이 나투었다는 미타도가 있다.
향일암은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고 그 아래로 끝없이 바다가 펼쳐진다.
기암절벽을 올라 거침없이 탁 트인 남도의 바다를 조망한다..
관음보살입상
남해를 내려다보며 지나다니는 배들의 안녕과
중생들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보살..
촘촘한 기와지붕과 어우러진 파란 하늘이 청명하다..
향일암 종각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복원한 대웅전..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향일암이다..
한국 불교의 4대 해수관음 기도처로 남해 보리암, 석모도 보문사, 낙산 홍련암과 함께 소위 '기도빨'과 '영빨'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원통암(圓通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하고 또 950년(고려 광종 9) 윤필(允弼)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1713년(숙종 39)에 돌산 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한 지 3년 뒤인 1715년에 인묵대사(仁默大師)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향일암>이라 했다고 한다.
1986년 대웅전과 관음전·용왕전·삼성각·종각·요사채·종무실을 새로 지었는데
2009년 12월 20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대웅전과 종각·종무실이 전소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 향일암..
화재로 인해 그때의 향일암은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향일암을 내려와,, 오동도로 향한다..
‘동백섬’ 오동도
멀리서 보면 섬의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여서 오동도라 했다고도 하고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란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14㎞의 해안선길을 따라 걷노라면 희귀한 수목들로 이뤄진 숲을 감상할 수 있고 ‘바다의 꽃섬’ 이라는 별칭답게 동백꽃을 실컷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최초로 수군 연병장을 만들었고 오동도의 신이대로 화살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빨간등대가 상큼하다..
공원길 걷기..
연인,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시원한 조망에 가슴이 뻥 뚤리는 듯 하다..
거칠것 없는 조망..
주상절리를 보는듯, 기암괴석들이 많다..
남해의 쪽빛 바다..
오동도 꼭대기에 있는 등대
편지 받는 이를 적어서 빨간 달팽이모양의 우체통에 넣으면 후에 그 사람에게 보내준다고...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할듯...
해상국립공원이라는 명성답게 깨끗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다..
오동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동백열차..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나 어린아이들은 동백열차로 섬을 둘러봐도 좋겠다..
섬을 여행하며 느끼는 안타까운 점은 자꾸만 '섬길걷기'로 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 잠깐 비춰지거나, 각종 인터넷 블로그, 카페 등에서 '좋다더라' 소문만 나면 금새 유명세를 타게 되어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해서 연륙교가 세워지고 각종 관광산업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섬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는 최상의 길이다.. 너무 난무한 개발은 삼가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다음 섬 여행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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