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기 그 여섯번째 : 추자도
다녀온 날 : 2014. 10. 3 - 5 (2박 3일)
여행 코스
첫째날 : 상추자 걷기 추자면사무소 - 최영장군사당 - 봉골레산 - 나바론 절벽
둘째날 : 추자올레길 걷기(약 9.2km) 추자면사무소 - 추자대교 - 묵리고개 - 묵리 - 신양2리 - 신양항 - 모진이해안 - 황경한의묘
- 신대산전망대 - 예초리기정길 - 예초포구 - 엄바위장승 - 돈대산 - 묵리교차로 - 담수장 - 추자교삼거리 - 추자항
셋째날 : 제주교구 추자공소 - 순효각 - 추자처사각 - 등대전망대 - 추자도 등대홍보관
연휴를 이용하여 2박3일 일정으로 ‘작은 제주도’라 불리는 아름다운 해상도시 - 추자도를 다녀왔다.
추자도 인근 해역은 낚시꾼들의 천국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하여 일본에까지 소문난 황금어장이다.
'추자도에서 양식은 멍게하고 사람밖에 없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자도에서는 사시사철 바다에서 얻는 먹거리로 풍성하다..
발길이 닿는 곳, 눈길이 가는 곳마다 바다와 산과 바위군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군도로,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다.
제주해협에 있으며, 총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추자대교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2개의 주 섬(상추자도와 하추자도)과 추포도, 횡간도 등의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자군도의 전체 면적은 7.05㎢이며, 2013년 말의 인구는 2,207명이다
목포항에서 추자도까지 데려다줄 핑크돌핀호..
추자항에서 바라본 어촌마을..
추자면사무소도 담아본다..
공휴일이라 조용한 추자초등학교..
섬학교인데도 축구장과 농구장까지 겸비한 모습이다.
추자초등학교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는 최영 장군 사당
사당 안에는 ‘조국군통대장최영장군' 이라고 쓴 신위와 최영 장군 영정이 걸려 있다 .
최영장군(崔瑩, 1316년~1388년)
고려 말 시대의 최영 장군은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는 유명한 말을 남긴 장수이다 .
최영 장군이 반란 진압 차 제주에 들어왔던 것은 1374 년이었다 .
때는 원나라가 망해가고 명나라가 흥해가던 격변의 시기, 명나라는 고려에 말 2 천 필을 요구했고, 고려는 제주의 말을 징발하려 했다 .
그러나 제주에서 말을 키우던 원나라의 목호들은 자기 황제들의 말을 명나라에 줄 수 없다고 거부하며 난리를 피웠다 .
이것이 목호의 난이다 .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제주 정벌을 계획하고 최영 장군을 탐라로 보냈다 .
최영 장군이 목호들을 토벌하러 제주로 들어가던 중 풍랑을 만나 후풍을 위해 추자도로 피신하였던 것은 8 월 24 일이었다 .
최영 장군은 추자도에서 5 일 간을 머물렀다 . 그리고 한 달 후 목호의 난을 진압하고 제주를 떠날 때에도 추자도에 들렀다 .
이때는 9 월 23 일부터 10 월 17 일까지 25 일간을 머물렀다.
추자도에 머물던 최영 장군은 추자도 앞 바다에는 고기가 많으나 주민들이 궁핍하게 사는 것을 보게 되었고 ,
이에 최영 장군은 주민들에게 그물 만드는 법과 그물로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줬다 .
그물로 고기를 잡게 되면서 추자도 주민들은 비로소 궁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최영 장군의 조그만 개혁이 추자도에 일대 변혁을 불러 온 것이다 .
이 일을 잊지 못했던 추자도 주민들은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리고자 사당을 지은 것이다 .
사당은 아담하고 기품있는 자태로 잘 보존되고 있으며 자연석의 돌담이 예쁘다.
지금도 음력 칠월 보름날과 섣달그믐날에 풍농과 풍어를 빌며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최영 장군 사당 뒤 해안으로 올라서면 시야가 완전히 트이면서
염섬, 추포도, 횡간도 등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봉글레 쉼터..
일몰의 순간, 구름 사이로 그아쉬움을 발산하는 저녁해..
후포어장
이 곳에서는 맨손, 호미 낫 등을 사용, 옛방식 그대로 고기를 잡는 소위 ‘갯바당잡이’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빼곡한 어촌의 형형색색지붕과 등대, 그리고 바다
나바론 절벽
추자도 등대 쪽으로 병풍을 치듯 깎아지른 나바론 절벽은 웅장한 규모로 경관까지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과연 절경이다. ‘나바론의 절벽’은 1961년 영국출신의 J.리 톰슨 감독의 ‘나바론 요새’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바위절벽이다.
당시 이 영화에는 그레고리 팩과 안소니 퀸의 주연으로 케로스 섬에 갇힌 영국군 2천명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영화이다.
포로를 구하러 가는 길목에 ‘나바론’이라는 섬이 있었고, 이 섬에는 독일군의 거대한 대포 두 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영화는 길목을 막고 있는 이 대포들을 폭파하려는 연합군과 이를 막으려는 독일군의 대결을 그린 영화다.
연합군 특공대가 목숨을 걸고 오르던 절벽이 바로 ‘나바론 절벽’인 것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절벽은 영화에서 보았던 절벽 만큼이다 서슬이 퍼렇다.
그래서 ‘나바론의 절벽’이라는 이름을 서슴없이 붙였나 보다.
추자도 여행.. 첫째날이 저문다..
사면 어디를 보아도 바다인 이곳, 추자도..
아름다운 해상도시답게 낙조 또한 뭔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둘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어귀, 어귀를 거닐며 산책을 즐겨본다..
원색의 등대가 기분까지 산뜻하게 한다..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다 작품이 되는 듯한 풍경들..
묘목들이 아직 어리지만, 잘 정돈된 숲길을 걷는 듯 하다..
추자도 명물 참굴비 조각상..
고려 17대 인종 때 내란을 일으킨 이자겸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추자군도의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 맛에 반하여
이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렸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屈非 -굴할 굴, 아닐 비)라고
이름을 지어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구설이 전해진다.
기다림..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느낌..
향수에 젖게하는 풍경..
그 아련한 기억속으로..
묵리 우물
이 곳 묵리마을은 추자도에서 우물이 가장 많은 곳이다..
주민들은 '둘박'이라고 부르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린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길게 형성된 묵리마을 전경..
어촌 풍경이 아침공기처럼 기분을 좋게 한다..
기억 저편에 있던 옛날 약국 모습 그대로...
공중전화부스..
이주노동자들에게 유용했을 소식 창고..
지금은 소는 없고 외양간만 남아있다..
'쇼핑'이라는 단어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덩그러니 배처럼 떠 있는 섬..
황경한의 묘
1801년 신유박해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하추자도 예초리 남쪽 나지막한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다.
황사영은 1775년 유명한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16세때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특하였다.
그러나 1790년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 명리를 버리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충북 배론에 피신하여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썼다.
이 백서를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체포되고,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관노로, 그리고 두 살 된 아들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난주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신자 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때인 1790년 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나았다.
1801년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젖내나는 어린 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 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한다.
대정 관노로 유배된 그녀는 38년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한양 할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며 살다가 1838년에 선종하여 현재 대정 성지에 묻혀 있다.
갯바위에 놓여진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지금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아니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튀어나온 바위에 바로 두 살 아기 황경환이 버려져 울던 장소가 있다.
제주교구에서는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어린 황경환을 내려 놓았다는 예초리 갯바위
황경한의 눈물 (황경헌으로 표기된 곳도 있음)
어부 오씨에게 길러지던 황경한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난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한다.
이 곳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써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
숨어 있는 역사를 알고나니, 마음이 짠하여 물 한 모금도 특별하다..
황사영 알렉시오와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순교를 기리듯,,
누가 만들었는지,, 나무 십자가 하나 애닯게 서 있다..
자연석을 박아놓은 집의 외관이 특이하다..
마당에 조기젖갈이 익는 냄새가 폴폴 나고..
예초리 포구, 하늘빛에 물들다..
엄바위장승(억발장사)
예초리 진입부분에 세워져있는 석장승이다.
옛날에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있었는데 엄바위 아래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개로 공기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어느날 횡간도로를 건너뛰다 미끄러져 넘어져 죽었는데 그 이후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마을 누군가가 장승을 깍아 세우고 나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돈대산 가는길에 만난 추억이 담긴 학교가는 샛길..
요즘은 잘 쓰지않는 '샛길'이라는 예쁜 단어가 아련한 추억속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돈대산 정상에는 해발 164m라고 표시된 표지석과 주변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시정이 좋은 날에는 한라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다무래미, 수령섬, 약생이섬, 추포도, 횡간도, 미역섬, 흑검도 등이
선단을 형성하듯 횡진으로 죽 늘어서 있다. 돈대산은 추자도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역시, 사방팔방 막힘없이 탁 트인 돈대산은 추자도 최고의 풍광을 선사한다..
돈대정
돈대산 정상의 팔각정이다.
시원한 공기와 아름답게 펼쳐지는 추자군도의 아름다움을 두눈에 담을 수 있는 곳..
가뭄이 심하면 주민들은 이 곳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섬생이섬
추자도에서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묵리마을 너머로
두꺼비가 엎드려 있는 형태여서 '두꺼비 섬(蟾)'자를 쓰는 섬생이 섬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대물을 꿈꾸는 낚시꾼들에게 인기있는 바위섬이기도 하다..
돈대산에서 조망되는 상추자도 전경
추자도 여행, 둘째날이 저문다..
낙조에 물든 어촌마을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셋째날>
제주교구 추자공소
신자들의 헌신으로 2003년 봉헌된 추자공소는 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신자들이 건축헌금 마련을 위해
생선과 젓갈, 쑥 등 돈이 되는 것들을 제주도와 육지에 내다 팔아 자금을 마련하여 건립되었다.
추자공소를 찾은 신자들이 꼭 가봐야 할 천주교 중요 유산이 바로 어제 갔었던 황경한의 묘이다.
황경한 묘역 주변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절경이라는 올레 18-1 코스가 휘감아 돈다.
예전엔 신자가 100명에 육박하던 때도 있었지만 섬 주민들이 육지로 떠나면서 현재는 3-40명 정도의 신자들이 모인다.
그도 그럴것이 만명을 넘던 추자도 인구가 2000명 내외로 줄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곳의 강동수(요셉) 선교사는 추자공소에 ‘명물’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성당 종이다.
추자공소의 종
구 공소에 녹슨 채 방치되던 종을 강선교사는 녹을 벗겨내고 기름칠을 해 현 공소에 설치 했으며,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에 삼종이 울려 퍼진다.
아침 6시, 종을 치는 강동수(요셉) 선교사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신자들은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드리며
비신자들에게는 밀레의 ‘만종’ 역할을 한다.
섬 주민들은 은은한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생각한다.
추자공소 내부의 모습
약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아담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다.
순효각
순효각은 지극한 효성을 가진 박명래의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일찌기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가 먹고싶다 하여, 슬피울며 하늘에 빌자 다음날 꿩을 얻어 드리게 되었단다.
그 후, 어머니도 병이 들어 죽게되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여 목숨을 연장하니,
목사가 순시하여 포상하고 그 행실을 속수삼강록에 기록하였다고 전해진다.
영흥리 좁은 돌담길을 지나,,
추자 처사각
추자 처사각(제주 유형문화재 제9호)
추자 처사각은 태인 박씨 문중의 입도 선조인 박인택의 은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박인택은 조선 중기 추자도로 유배되어 불교적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교리를 가르치며 살았다고 한다.
추자 처사각에서 본 상추자항
제주 올레길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올레'란 집 대문에서 마을 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고어로는 오라, 오래라고 하며, 문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 올레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올레는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집으로 가는 골목 올레는 집과 마을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길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제주 돌담길의 미학을 보여주는 길이다.
제주올레는 발음상 "제주에 올래?"라는 초대의 의미도 담고 있다.
<출처: 사단법인 제주올레>
등대 전망대
이 곳에 올라서면 추자도 등대 홍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추자등대에서 바라본 하추자 전경
추자대교를 기준으로 좌우로 바다가 나뉜듯 섬들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조망..
이번 추자도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포토타임이다.
추자대교는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하추자도 묵리와 상추자도 영흥리 사이 바닷길을 이어주는 212m의 작고 아담한 다리다.
1966년 착공되어 1972년에 완공된 다리가 있었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교각과 슬래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붕괴 위험에 빠졌다.
다리는 결국 1993년 4월 모래를 싣고 가던 트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어 2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새 다리를 놓기 시작해 1995년5월, 길이 212m 너비 8.6m로 확장되어 개통되었다.
무르익는 가을풍경..
추자도여 안녕~!
특별한 섬의 매력이 물씬느껴지는 추자도.. 지인들에게도 많이 추천하고 싶다..
추자도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곳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고, 바로 알게 되며 풍경보다 더 깊은 울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다음 섬 여행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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