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의 풍경

고창읍성

박태문 2015. 8. 12. 09:37

 

 

 

 

 

동리 국악당 (고창읍성 입구에 자리하고 있음)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판소리 이론가이자 개작가, 후원자였던 동리() 신재효( 1812~1884)의 문화적 업적을 계승하고,

판소리 전승의 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설립한 국악공연장 겸 국악교육장이다.

 

 

 

 

 

 

 

 

고창읍성하면 답성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주로 부녀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이 성을 한바퀴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야기지만 1,700m에 이르는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다릿병도 낫고 건강해질듯 하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앙절에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고창 주민들이 한복을 입고 답성놀이를 재현한다고 한다.

 

 

 

 

 

 

 

연일 폭염으로 밤잠도 설치기 일쑤였는데, 이 곳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한창이다..

휴식이 있어 좋고, 여백이 있어 좋다..

 

 

 

 

 

 

고창읍성 내부에 있는 맹종죽림..

원산지는 중국이며, 운치를 돋우고자 조성하였다고 한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조선 단종원년 (1453) 에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를 모아 축성한 자연석 으로 축성한 성곽이다.

 

1965년 4월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고창읍성"은 일명 모양성(牟陽城) 이라고 불리우고 있고,

나주 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하여 호남 내륙의 방어기지로서 만들어 졌다 한다.

 

 

 

 

 

 

 

 

고목 한 그루가 시선을 잡는다..

 

 

 

 

 

 

북문인 공북루(왼쪽)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倭侵)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이다.

사적 145호로 등록된 고창읍성은 성의 둘레만 해도 1,684m에 높이 4~6m, 넓이는 무려 50,172평이나 된다.

전체 면적은 5만200평이며 당초 22개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되고 1976년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여  

지금은 북문(공복루), 서문(진서루), 동문(등양루) 등의 3개문등과 함께 14동의 관아건물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고창내아(高敞內衙)

 

 동헌은 외동헌(外東軒)과 내동헌(內東軒)으로 나뉘는데 외동헌은 사무처로 흔히 이를 동헌이라 불렀으며,

내동헌은 수령(守令)이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내아라고 불렀다.

 

 

 

 

 

 

 

고창동헌(高敞東軒)인 평근당(平近堂)

 

 조선시대의 목(牧)과 도호부(都護部). 군(郡). 현(縣)등 각 행정단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守令)이 정무(政 務)를 보던

청사(廳舍)를 세웠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동헌(東軒)이라 하였다. 

건물정면에는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平近堂)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성황사(城隍祠)

 

 성황신(城隍神)은 고을의 평화와 풍년을 지켜주는 수호신(守護神)으로 섬겨왔으며 지금도 매년 중양절(重陽節)

 모양성제(牟陽城祭)날에 이곳에서 제사를 올린다.

 

 

 

 

 

 

관청(官廳)

 

 관청은 관주(官廚)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廚房)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守令)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賓客)의 접대와 각종잔치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管掌)하였다고 한다..

 

 

 

 

 

 

관청을 좀 더 가까이에서 담아보았다..

 

 

 

 

 

 

 

 

풍화루(豊和樓)

 

 고창읍성 연못(蓮池)옆에 세운 2층 누각(樓閣)으로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문헌(文獻)에는 성내에 빈풍루와 풍화루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건물과 연못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9년에 풍화루를 복원하고 이어 1990년에 연못을 복원하여 놓았다.

 

 

 

 

 

 

 

 

옥은 죄인을 가두는 곳으로 감옥(監獄) 또는 원옥(圓獄)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옥은 대개 관아(官衙)의 입구에다 짓고 동쪽 칸과 서쪽 칸에 남. 여 옥을 나누어 만들고

높은 담을 둥글게 둘러 쳤는데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원옥(圓獄)이다.

 

 

 

 

 

 

 

고창읍성자연석으로 축조된 성벽이다.

거칠게 다듬어진감이 있지만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어 선조들의 슬기를 엿볼수 있다.

낙안읍성은 성안이 마을로 이루어진 반면, 이곳 고창읍성은 울창한 산림과 얕은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을 더불어 새소리를 들으며 걷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의 3대 읍성..

일전에 갔었던 전남 순천에 위치한 낙안읍성.

이번에 다녀온 전북 고창에 위치한 고창읍성.

마지막으로 충남 서산에 위치한 해미읍성이다..

조선시대에 300여개의 읍성들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 때에 거의 대부분 훼손되고 해체되었다.

하지만 위 3개의 읍성은 외진곳에 위치하여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음번엔 천주교 박해와 깊은 연관이 있는 해미읍성을 고대해 본다..

여름의 한 가운데서, 몸은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찰라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주마을 해바라기 군락..  (0) 2015.09.21
학원농장 해바라기축제  (0) 2015.08.12
꽃밭에서..  (0) 2015.08.11
<미국여행4>포틀랜드  (0) 2015.06.30
<미국여행3> 나이아가라 폭포  (0) 201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