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의 풍경

여행기 (태백, 영월, 단양, 영주, 예천)

박태문 2017. 10. 30. 11:54





               여행일자 : 2017년 10월 7-9일 (2박3일)

               여행지 : 경주 흥덕왕릉 - 태백 광산촌 , 칠암천 단풍 - 태백 매봉산 풍령발전단지 - 원대리 자작나무 숲-

                        영월 선암동 한반도지형 -  단양 도담삼봉 - 영주 선비촌 - 예천 회룡포 - 삼강주막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카메라 둘러메고 떠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쉼이자, 새로운 에너지의 충전이 되곤 한다.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 흥덕왕릉>



경주 흥덕왕릉


경주에 있는 수많은 고분 중에서 신라왕의 이름이 붙어있는 릉은 모두 38기다.

그러나 이 가운데 무덤 주인이 정확게 밝혀 진 것은 단 2기로 태종무열왕릉과 흥덕왕릉 뿐이다.

서악동 무열왕릉은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씨가 비석의 이수에 적혀있고,

흥덕왕릉은 1977년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사무소의 발굴조사시 상당수의 비편이

발견되었는데 비편 중에서 '흥덕'이라는 글씨가 발견되어 왕릉의 주인을 확실하게 알수 있었다고 한다.



흥덕왕릉은 경주 북쪽 안강읍 육통리에, 경주 시내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홀로 있다.

흥덕왕릉은  합장릉이다. 예순살에 사망한 왕은 유언에 따라 먼저 사망한 장화부인(나중에

정목왕후로 추봉)의 능에 합장하였다. 경주에서 확인된 유일한 합장릉이다.

 한개의 봉분에 두 인물이 함께 묻힌 것도 이 왕릉 뿐이다.

왕릉 남쪽으로 4기의 갑옷을 착용한 석인상이 있다.


 







왕릉의 전방 왼쪽에는 능비를 세웠던 귀부가 있으나 손상이 매우 심하다.

비신과 이수는 사라지고 없으며, 귀두 역시 잘려나갔고 귀갑과 발 부분도 파손이 심하여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다. 

이 귀부는 경주지역에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나 조각의 섬세함은 떨어진다고 전해진다.









왕릉을 품고있는 소나무의 자태..









<태백 광산촌>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철암탄광역사촌'











 역사문화촌..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마을의 모습.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안내소, 전시관 , 갤러리로 꾸며져 있다.












까치발 건물


철암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상가 건물들이 길가 쪽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천변 쪽으로 발코니 형태의 공간을 증축하면서

하천 바닥에 기둥을 세워 떠받쳤던 모양을 따 붙인 이름이 까치발 건물이다. 이곳에 오면 꼭 봐야할 곳 중에 하나.


철암탄광역사촌은 탄광이 있었을 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당시의 모습과 시대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칠암천 단풍>




칠암 단풍군락지


가을의 강원은 화려한 수채화다..

단풍을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매년 늘어가고 있다고..









칠암천, 호젓이 불타는 단풍에 관광객의 마음도 행복으로 불탄다.




 





<태백 풍력발전단지>



백두대간 능선들이 벌떡벌떡 일어서는 강원도 태백..











풍력발전기를 담아본다. 조망이 시원하다.










가을다운 파아란 하늘









하얀 발전기와 파란하늘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고랭지 배추 수확을 마친곳의 모습..











해발 1286m의 산골인 태백시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여름철 하루 평균 1100~1200여명이 찾는 명소이다.

한 여름에 방문한다면 에어컨을 방불케 하는 자연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구비구비 밭 사이로 난 길이 재밌다.











고냉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배추는 상당부분 수확이 끝난 상태이지만 경치는 아주 좋다.











초원을 보는듯, 초록의 상큼함이 좋다.










17기의 풍력발전기와 116만㎡에 달하는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모운동 마을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어 담아본다.


모운동은 해발 7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주문2리라는 행정 명칭보다는 '구름도 쉬어간다'는 뜻으로 모운동이라고 불린다.

모운동에 이르는 외길은 옥동천 옆에서 시작된다.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고개를 넘는데, 사방이 높은 산들에 둘러싸였으니 '벽골'이요,

지천인 참나무를 땔감으로 쇠를 벼르던 대장간이 있던 골짜기여서 벼리미(비림)골이라고 했다.

그 험한 골짜기를 겨우 올라서 산꼬라대이(꼭대기) 부근에 이르자 뜬금없이 나타나는 산촌마을이 바로 모운동이다.












모운동 마을 전경..










고랭지 배추의 모습..











하늘과 닿은듯, 언덕 끝까지 배추밭이 이어진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우리나라 최대의 자작나무 군락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하얀나무가 뒤덮여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래 이곳은 소나무숲이었는데 솔잎혹파리 피해를 당해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

대신 목재 생산용 낙엽송을 심을 계획이었으나 묘목이 부족해 대체 수종으로 북한 압록강변에서 채취한 자작나무 묘목을 1989~1996년에 심었다.

전체 조림 면적지(138㏊) 중 핵심 군락지는 25㏊다.

자작나무숲이 알려진 것은 2006년 유아숲체험원으로 지정된 후 방문했던 유치원 교사가 블로그에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한다.







<영월 한반도 지형>



강원도 영월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명승 제75호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지형을 쏙 빼 닮은 명소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의 지형과 너무도 흡사해 보는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반도지형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주차장에서 약 1km를 걸어야 한다.










한반도 지형은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을 대표하며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굽이쳐 흐르는 하천의 침식과 퇴적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도담삼봉>



도담삼봉(島潭三峯)


단양 8경 중 하나로, 명승 제44호로 지정되어 있는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명승지이다.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높이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딸봉)과 오른쪽의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있다.










단양팔경 중 제7경인 도담삼봉..
남한강의 수면을 뚫고 올라 온 듯한 3개의 아름다운 봉우리..
 단양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 들리게 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도담삼봉과 석문을 볼 수 있는 주차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도담삼봉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정도전(1342~1398)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시기 태조 이성계와 함께
역사의 중심에서 새로운 나라를 설계한 인물이다.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도담삼봉에서 따와 ''삼봉''이라고 할 만큼, 도담삼봉을 좋아했다고 한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 내려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영주 선비촌>



선비촌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조선시대 선비계층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영주시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1977년부터 2004년까지

8년에 걸쳐 조성한 전통민속마을이다..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며,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로 성리학자였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비촌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 하고자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다.

 






열부각, 충복각


조선말에 반남 박씨댁 규수가 이 마을의 여흥 민씨 가문으로 출가했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죽자 홀로 시집살이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웃 천석꾼 김아무개가 집요하게 연정을 품고 모함과 뜬 소문을 퍼뜨려서

견디다 못해 관에 호소를 했으나 바로잡히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결백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자 이 과정을 지켜 본 집안 하인 고만석이 마님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고자 

상경하여 우여곡절 끝에 임금에게 알려 신원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소수서원이 주체가 되어 전국 유림들의 발의를 얻어 두 사람의 가상한 뜻을 

가리고자 나라에 상소하여 순조 22년에 열부 박씨에게 정려각을 내렸고, 

고만석에게도 충성심을 기려서 철종 14년에 충복각을 내렸다고 소개가 되어 있다.








가훈을 써주는 곳..

공예품 체험과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조상들의 자취들..











장인이 엣날 모습 그대로 발을 만들고 있는 장면..

한 땀, 한 땀 정성과 노련함은 일반인이 보아도 알 수 있다.












죽계천() 변의 전답을 매립한 1만7천여평의 부지에 들어선 선비촌의 모습











선비의 대쪽같은 강직함을 드러내면서, 꾸밈이 없는 소박한 가옥들..









당나귀.. 이곳에서는 각종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데

그 중 단연 인기는 당나귀타기 체험으로 꼬마손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분위기가

바쁜 일정의 피곤함을 잠시 잊게한다..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 사람들을 신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와 생활도구를 전시하였으며,

 선비의 일생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간접적인 공간을제공하고 있다.










선비촌의 중심이 되는 12채의 고택은 영주시 관내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던 전통 깊은 

고가들, 즉 두암 고택, 인동장씨 종택,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김세기 가옥,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채와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등 초가집 5채 등 실존하는 가옥들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고택들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정신을 표현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4개 구역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선비촌..












부사 정중창 영세 불망비


조선 중기 우리 고장 순흥도호부의 부사를 지낸 정중창<鄭重昌, 숙종 19년(1693)- 숙종 24년(1698)>의

재임중에 남긴 업적을 기리고자 향민들이 세운 일종의 기념비이다.

재임시 백성을 위하여 많은 선정을 펴서 그가 교체되자 백성들이

그의 고마움을 잊지못하여 불망비를 세웠다고 한다.

2004년 소수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영주 선비상의 위엄










이씨송











이씨송의 모습










<영주 무섬마을>



육지속의 섬마을, 무섬마을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350여년간 무섬 마을과 강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활을 한 외나무 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 이다.

외나무 다리는 해마다 새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택의 처마에 가을이 물씬 느껴진다..












<예천 회룡포>



비룡산 장안사


회룡포를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장안사가 위치하고 있다.

장안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지만 최근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장안사 대웅전 전경











하천 침식에 의해 깎여진 비룡산의 능선에 위치해 있는 회룡대에서 보는 '회룡포'


회룡포는 내성천이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극무늬 형태로 흐르면서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은 곳이며,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분포하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지형 중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어서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것을 용의 형상에 비유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의성포(義城浦)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하천이 성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의성포라고 하면 의성군에 있는 지명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회룡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은 S자형으로 흘러가는 감입곡류하천의 지형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곳은 맑고 푸른 강물, 은모래가 쌓인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급경사의 지형,

울창한 식생,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천년 신라에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삼강주막>



옛 주막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삼강주막과 그 뒤로

수령 약 500년 된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준다.











삼강주막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유옥연 주모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1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들이객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강주막은 2005년 11월 20일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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