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 일주문..
"월출산무위사"라고 적혀있는 일주문을 지난다..
무위사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무위사 사적에 의하면 무위사는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육사로서 유명하였다.
극락보전(국보 13호)은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했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에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우리나라 조선 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의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은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는 달리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해탈문을 지나면 볼 수 있는 보제루..
옛 건물과 최근 신축한 건물의 조화가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제13호)
오랜시간 자리를 지켰을 고목..
무위사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마음까지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절은 풍수지리적으로 따져서 좋은 위치에 짓기때문에..
절에 들어서면 좋은 기운으로 왠지 마음이 평온해 진다.
극락보전의 한 귀퉁이..
극락보전은 측면이 아름답다고 한다.
무위사 내 가장 오래된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조선 초기 주심포식 건물로,
성종7년(1476) 또는 세종 12년(143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극락보전 내에는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뒤 아미타삼존도를 제외하고는 전시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곳 벽화는 탱화로 그려 내건 것이 아닌 모두 토벽(土壁)의 붙박이 벽화로 고려 불화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측면에서 보니 기둥과 들보를 노출시키고 조화로우면서 단정한 멋을 담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깊이 우러나는 느낌.. 그런 느낌이다..
안내판도 담아본다..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312호)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된 극락보전의 외부 모습은 소박한 듯 단아하지만,
대신 내부를 불화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불교의 극락세계를 표현하였다고 한다..
무위사 범종각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세련되고 화려함이 돋보이는 종각이다..
사찰의 아름다음은 이런곳이 아닐까 한다..
무위사에서 바라본 월출산..
그 산세가 장쾌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