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문화재 답자 왕릉 2>지마왕릉,정시 시조묘

박태문 2019. 10. 8. 11:09



정씨 시조묘


경상북도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정씨의 도시조()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 )의 촌장이던 지백호()라는 것이 통설이며

이른바 범정씨()의 '큰 집'격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상계세보()》에 따르면 경주정씨의 시조(중시조) 진후(:고려 )는 지백호의 40대 손이 된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는데, 그중 정희계()가 잘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은 희계의 5대 손인 군수 정명선()의 아들이다.

 이밖에 세종 때 좌찬성이 추증된 정지년(), 명종 때 성리학의 대가 정지운()을 들 수 있다.





지마왕릉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6대 지마이사금의 능. 사적.




경주지마왕릉은 1971년 4월 21일 사적 제221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9,488㎡이다. 지마이사금은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의 아들로서 성이 박씨()다.

 어머니는 사성부인()이며 왕후는 김씨() 애례부인()으로 갈문왕()마제()의 딸인데 아들은 없었다.

 지마이사금은 대략 23년의 재위기간 동안 가야·왜·백제와 군사적인 대치를 벌이는가 하면 외교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왕릉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일단 높은 곳에 만들고,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이다.

 무덤의 지름은 12m, 높이는 3.4m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식물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왕릉 앞에 놓여 있는 잘 다듬은 돌은 1955년에 설치한 것으로 영혼이 나와 놀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다는 혼유석()이다.


이 왕릉은 남산 서북쪽에 분포하는 무덤 가운데 가장 특징이 없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왕릉은 경주 평지에 있는 고분과 입지조건이 달라 2세기경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마왕릉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이 왕릉이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독분인데가 봉분의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신라 말기인 9세기대 굴식돌방무덤〔〕이었을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