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문화재 답사 23> 월정교, 인용사지, 일정교지

박태문 2018. 3. 28. 15:12





월정교, 인용사지, 일정교지


답사일 : 2018년 3월 13일






월정교


월정교는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월정교를 지나던 중 신하를 보다가 물에 빠져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에서 옷을 말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머물다 아들 설총을 얻었다는 문헌이 전해져 오는 교각이다.

복원공사가 마무리중에 있어 주위가 조금 어수선했지만 교각의 구조물은 거의 완성단계로 보였다.








경주 인왕동 사지(慶州 仁旺洞 寺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반월성을 배경으로 남산을 바라보는 곳에 있는 절터이다.

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11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3호로 승격되었다


경주 인왕동 사지는 신라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원찰(願刹)인 인용사(仁容寺) 터로 추정되어

 1991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주 인용사지’로 지정되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인왕동 사지는 중문‧쌍탑·금당·강당·회랑을 기본으로 하는

신라의 전형적 가람배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른 신라 사찰과 비교되는 독특한 건축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문 자리에는 유례가 드문 '아(亞)'자형 건물지가 있고, 쌍탑은 여느 사찰과 달리 금당의 좌우측면 남북축선 안쪽에 위치한다.

또한, 백제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와축기단(瓦築基壇 기와를 쌓아 만든 기단)을 구축였으며,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 양식을 보여주는 석탑은 팔부중(八部衆)이 명확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10년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자기류, 전돌류, 토기, 목간, 금속유물, 지진구(地鎭具)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기와는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완성도 높은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대부분이다.

지진구는 건물을 지을 때 좋지 않은 땅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묻는 의례용 유물로, 인왕동 사지에서 확인된 지진구는

신라 시대 지진구를 묻는 방식에 대한 연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가치가 높다.

아울러 출토된 청자, 백자 등 중국 자기를 통해 신라와 당나라의 교역에 관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발굴조사에서는 절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銘文)기와 등 인용사(仁容寺) 터임을

밝힐 수 있는 유물은 출토되지 않아 지정명칭을「경주 인왕동 사지」로 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경주 인왕동 사지는 신라의 전형적인 평지이탑식 가람배치(중문·양탑·금당·강당·회랑)를 기본구조로 하면서

亞자형 건물지 등 독특한 유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 양식인 쌍탑에 모두 팔부중이 조각되어 있고 자기류, 전돌류, 토기, 목간, 금속유물, 지진구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신라 사찰 건축 등의 연구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일정교지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정교는'삼국사기' 경덕왕 19년(760)조에 기록된 '춘양교(春陽橋)'로 추정되는 다리로

동.서편 교대와 날개벽, 3개소의 주형(舟形) 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이는 최소 55m, 상판의 너비는 최소 12m, 교량의 높이는 5m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정교는 경주 남산과 남쪽 외지를 연결하고 월정교는 신라왕경 서쪽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여

신라 왕경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