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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 18> 남남산의 유적들

박태문 2017. 11. 20. 11:38



남남산의 유적들

(별천룡골, 열암골1사지, 새갓골, 봉화대, 신선암, 칠불암, 모전석탑, 심수골, 양조암골3사지, 능선길)


답사일 : 2017년 11월 11일


 

 

 


 



 

별천룡곡 제1사지 탑재

 

별천룡곡 제1사지의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 다수의 탑재들이 흩어져 있다.

 

 

 

 

 

 

 



 

사찰의 금당지로 추정되어 주변에 다수의 탑재들이 흩어져 있고,

아래편 계곡에 노출된 상태로 옥개석이 있다.

 

조사 결과 금당을 중심으로 쌍 탑의 가람배치이며 동일한 크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옥개석에는 5단의 층급받침이 새겨져 있고 주변에 주춧돌이 흩어져 있다.

(안내문 전문 발췌)

 

 

 

 

 


 

탑재들..

 

 

 

 

 

 

 

 


 

경주남산열암곡 석조유구

 

 

 

 

 

 

 

 


 

유구에 새겨진 문양을 크게 담아본다.

 

 

 

 

 

 

 


 

경주남산열암곡 석조유구(慶州南山列岩谷 石造遺構)

 

이 유구군은 흩어져 있던 유구들을 분실 및 훼손방지를 위하여 정비한 것이다.

화강석으로 된 이 석조 유구는 총 15기로 정확한 연대와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유구에 새겨진 문양과 형태로 보아 일부는 불상의 유구로 추정된다.

(안내문 전문, 경주시)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경주 남산의 열암곡에서는 석불좌상 정비사업 중 8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추정 무게 70 t)이

전복된 상태로 발견되어 아직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경주 열암곡석불좌상 
(높이 108㎝.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현재 머리 부분이 없는 상태이다.

신체는 늘씬한 편이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얇게 표현되었으며 옷주름은 비교적 세련된 모습이다.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이 위로 향하게 들고 있고, 무릎 위에 얹은 오른손은 손등이 보이면서 손끝은 땅을 향하게 하고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의 아랫부분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에는 위로 향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연꽃무늬 장식과 굴곡이 없이 늘씬한 신체, 옷주름의 세련된 기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불두가 2005년 발견되어 2009년 1월 현재의 완전한 불상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 절벽의 바위 면을 얕게 파고,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새긴 마애불이다.

머리에는 높은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썼으며, 그 위로 보계(寶髻)가 솟아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정제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두 볼이 처져 비만한 모습은 근엄한 표정과 함께 남성적인 기풍이 역연하다.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까지 늘어져 둥글게 뭉쳐 있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무릎 폭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천의(天衣)는 약간 비만한 몸의 굴곡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무릎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들어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쥐고 왼손은 엄지와 장지를 맞대었으며,

오른발은 대좌 아래로 내려 연꽃 족좌(足座)를 밟고 왼다리를 무릎 위로 올려 유희좌(遊戱坐)에 가까운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의 보살상은 시대가 지나면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 상주하는 관음보살로 표현되는 것이 원칙이다.

대좌는 옷자락이 대좌를 덮고 있는 상현좌(裳懸座)로서, 옷주름은 고식의 기하학적인 의문(衣文)이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다.

 

발밑에는 동적인 화려한 구름을 새겨 상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이 보살상이 천상(天上)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광배는 바위 면을 주형(舟形)으로 얕게 파내어 거신광(擧身光)으로 삼고, 그 내부는 세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광배의 윗면은 일단의 턱이 지면서 가로로 길게 팬 자국이 있어 본래는 목조 전실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체의 양감(量感)이 강조된 조각 기법과 섬세한 세부 표현, 장식성의 경향이 엿보이는 점 등에서 이
마애보살상은 전성기 통일신라 조각 양식에서 조금 벗어난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보 제312호. 모두 7구가 모셔져 있다.

높이는 본존상 2.66m, 오른쪽 협시보살(脇侍菩薩) 2.11m, 왼쪽 협시보살 2.11m,

동면상(東面像) 1.18m, 서면상 1.13m, 남면상 1m, 북면상 72cm. 2009년 9월 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가파른 산비탈의 동쪽과 북쪽에 높이 4m 정도 되는 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을 모셨다.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했다.

본존불은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앉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양감 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는 소발이며,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다.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은 입상으로 크기가 같다.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의 법의가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가 돋보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삼존불상을 새긴 바위 앞에 있는 돌기둥에는 사방불을 새겼는데,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이 주변에서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이곳에 불상을 모시는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각기법 및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다음백과)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기술과 예술적 감각, 종교적인 숭고미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삼존상 앞에 놓여 있는 사면석주에는 각 방위를 주재하고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새겨

이곳의 사방불은 이후 전개될 석탑 사방불의 조형(祖形)이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큰 조각사적 의의가 있다고 전해진다.

 

 

 

 

 


 



 

불심..

 

 

 






 

칠불암

 

 

 

 

 




 

칠불암 전경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모전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삼층석탑.

017년 2월 7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예고 절차를 거쳐, 2017년 4월 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35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2000년∼2001년까지 2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선행한 후, 석탑 부재를 모아

2002년에 복원하였는데 노반석 아래의 부재는 남아있는 원 부재를 사용하였다.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에 관한 문헌기록이 없어 용장계지곡 삼층석탑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확인할 만한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탑지 주변에서 '용(茸)'자명을 비롯한 9점의 명문와가 출토되어 용장사(茸長寺)와의 연관성이 짐작된다.

 

용장사지(탑상곡 제 1사지)에는 삼층석탑과 마애불좌상, 석불좌상이 전해오며, 그 일대에 여러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곡 제3사지에서 출토된 와당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을 통해서 이곳의 사찰이 통일신라 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석탑지에서 주변에서 출토된 분청사기편과 백자편 등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사찰이 이어져 왔음을 말해준다.

 

이 탑은 전탑형석탑으로 8개의 커다란 방형석재를 기단으로 구축하고 옥개석이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별다른 장엄장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점에 있어서 전형적인 통일신라석탑과 다른 점을 보인다.

그 세부를 살펴보면, 7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8매의 기단석이 상·하 2단으로 나뉘어져 각각 4매씩 올려져 있다.

상층 기단석 위에는 3단의 탑신 받침이 있는데, 하단 모서리가 깨진 상태이며, 이 탑신받침 위에 1매의 석재로 된 1층 탑신석이 올려 있고

그 위에 올려진 옥개석 전각의 네 모서리에는 풍탁이 달려있던 구멍이 뚫려있다.

 

2층 탑신석 역시 1매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3층 탑신은 2층 옥개석 낙수받침의 상단과 3층 옥개석의 하단이 맞닿아서 이어진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전탑은 안동을 중심으로 나타나지만 이 탑과 유사한 벽돌형식 석탑은 경주지역에 집중하고 있어서 지역적 맥락을 이룬다.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보물65호)과 경주 남산동 동삼층석탑 (보물 124호) 등과 함께 경주지역,

특히 남산 주변에서 조형된 장소적인 특징도 나타나고 있어 한국석탑에서 '전탑형석탑'이라는 하나의 계보를 이룬다.

이 탑은 모전탑 계열의 형식으로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악동 석탑과 남산동 동 삼층석탑을 통해 제작시기의 추정이 가능하고,

일부 파손되었으나 상륜부가 남아있고, 원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외관이 양호한 편이다.

(출처: 문화재청)

 

 

 

 


 

 


 

경주 침식곡 석불좌상

 

경북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소재.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불상으로
불상 높이 95c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석불은 신라 말기의 촉지인 여래좌상. 전형 형식의 삼단대좌를 갖추고 있다

 

 

 

 

 


 

 

백운계 양조암곡 제3사지 탑재

 

양조암곡 제2사지에서 계곡을 건너 북서편 쪽에 축대와 탑 부재가 흩어져 있는 곳이 양조암곡 제3사지이다.

 현재 제3사지 주변에는 칡넝쿨과 잡목이 덮여 있어 정확한 가람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일부 건물지와 우물지가 확인되어 1960년경까지 사람들이 거주 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