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2> 감은사지
경주 감은사지
답사일 : 2017년 5월 30일
감은사지(感恩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인 감은사의 터이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감은사는 원래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문무왕이 지은 절인데, 절을 짓기 시작한지 1년 만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것이‘감은사’이다.
문무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해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감은사지 금당 터에는, 신문왕이 절을 지을 때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선왕의 유언에 따라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큰 삼층석탑 두 기와 금당과 강당, 회랑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웅장하고 기품 있는 석탑은 물론이고 가람의 배치도 군더더기 없이 정연하다.
문무왕과 신라인의 호국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듯 삼층석탑은 굳건하고 장대한 풍모다.
탑의 상륜부에는 높이 약 3.9m되는 찰주가 꽂혀있다.
찰주는 탑의 상륜부를 장식하는 석재들을 꽂기 위해 세운 쇠기둥인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부식되므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한편, 1959년 발굴 조사 때에는 서쪽 탑에서 화려하고 섬세한 청동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발췌>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감은사 금당 밑에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도록 구멍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용이 된 문무왕이 금당에 들어오게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부합된다.
파란 하늘로 향한 탑의 상부가 아름답다.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들.
그 밑에 오셔서,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며,
용이 되어서라도, 불법을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굳은 의지인듯 하다.
토대 밑에는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동해바다를 지키는 호국룡이 된 문무왕이 감은사에 와서,
부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대한 풍모의 탑..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는 감은사 금당 밑에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도록 구멍을 하나 만들어
문무왕의 혼(魂)인 호국룡(護國龍)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1980년 발굴조사 결과 호국룡 설화가 어느 정도 사실임이 입증되었는데, 금당의 기단면(基壇面)보다
두 자 정도 낮은 곳에 귀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홈이 파진 사각초석을 놓았다.
그런 다음 그 위에 돌귀틀을 짠 뒤 돌마루를 깔고, 다시 원형초석을 올려놓고 기둥을 세웠다.
다시 말해서 금당 바닥 아래에 완전한 지하공간을 조성한 매우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신라 동해구’ 표석이 있는 동해구 공원.
신라인들은 대종천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을 동해구라 부르고 신성시 했다.
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대종천(大鐘川)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곳이 바로 동해구(東海口)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은 삼국을 통일한 뒤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