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순교자성당
오륜대 순교성지
이 곳은 한국순교성인 103위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 성당과 순교자 묘소가 있는 곳으로
부산에서는 수영장대에서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그리고 함께 옥에 갇혔던 여섯 분의 신자들이 군문효수의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그들이 순교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순교자들의 얼과 사랑의 위업을 높이 기리고 전파하고자
한국 순교복자수녀회에서는 이곳 오륜대에 수도원을 설치하고 순교자 성당을 건립 하였으며
명장동에 있던 이정식 요한 회장의 가족 네 분의 무덤만이 조사 확인되어 이곳으로 이장하여 부산 순교자 묘소로 꾸미고 안치하였으며
한국의 가톨릭순교자를 헌양하기 위하여 한국순교자박물관을 설립하여 수많은 자료들을 소장하여 전시를 하고 있다.
복자 양재현 마르티노
복자 이정직 요한
두 복자의 동상이 이렇게 출입구에 서 있다..
오륜대는 다섯 노인이 지팡이를 꽂고 놀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역 이름이라고 한다.
성 골롬바와 아네스 자매의 동상
성 김효임(골롬바)과 성 김효주(아녜스) 자매는 1814년과 1815년에 태어났다.
그들은 세례성사를 받은 후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서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여 수계하였다.
그러나 1839년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고 두 자매는 체포되어 그 해 9월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최양업 신부탄생 175주년 기념비
최양업은 한국천주교회의 최초의 신학생이며 두번째 신부님이라고 한다..
경상도 지역을 담당했던 신부님들의 부조..
서양인 신부도 한국 성을 사용한 것이 이채롭다..
오륜대 순교자성당 내부..
수수한 건축양식임에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순교자 묘소
성당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면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이 나타나고 그 위쪽으로 동래 출신 8명의 순교자 무덤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다.
80여 세의 노구로 사형의 험한 꼴을 당한 이정식(요한), 그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 이관복의 처 박소사(마리아)등 일가를 포함한
8명의 순교자는 병인박해의 서슬 아래 1868년 6월 부산 수영 장대(水營將臺: 현 부산 광안동 수영 중학교 뒤)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의 극형을 받았다.
이들 8명 중 이정식의 가족 4명의 무덤이 본시 부산 동래구 명장동 산 96번지 가르멜 수녀원 뒷산 등에 묻혀 있었다가
1977년 9월 19일 현재의 한국 순교자 기념관 뒷동산으로 이장되었고 다만 나머지 4명의 무덤은 아직 찾지 못해 기념비만을 세워 두었다.
마리아상..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조선말기 한국 순교자들의 유물과 교회사 자료들이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에 의해 수집, 정리, 전시, 보존되고 있다.
해방 직후인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 되던 해(1946년 4월 21일)에 황해도 개성본당의 주임신부인 방유룡(안드레아) 신부는 윤병현(안드레아),
홍은순(라우렌시오) 두 수녀와 함께 '복음 선포와 순교자 현양'을 목적으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하게 된다.
본 수도회에서는 설립 취지대로 순교자들의 얼을 기리고 후손 대대로 순교의 신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본회 수녀들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여
전교와 함께 사라져가던 순교자의 유물과 교회사자료, 박해시대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민속자료들도 함께 수집하거나 기증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기념관 설립을 계획한다.
그런데, 서울교구에서 먼저 병인박해(1866년)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1968년에 절두산 순교기념관과 성당을 건립하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지역 내에 순교자기념관을 세우기로 결정한 후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의 협조로 1982년 이곳에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을 개관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전시하여 순교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생활상을 느껴볼 수 있게 하였다.
순종비 순정효왕후와 의왕비 김덕수 마리아님께서 기증해 주신 궁중유물, 대원군의 친필 등 왕실의 유물들과 김인순(누갈다)님께서 기증해 주신
조선시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많은 민속품 등도 함께 소장하고 있어 조선 말기와 개화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